송민호 솔로앨범 <XX> 리뷰 (3) 소원이지




  송민호 첫 솔로앨범 <XX> 앨범에 대한 모 음원사이트 댓글란에서 이런 코멘트를 본 적이 있다. "우원재도 아니고 최원재(키드밀리)도 아니고 'feat. 유병재'라고?" 그렇다. 이 노래에 피쳐링을 해준 인물은 다름 아닌 희극인 유병재. 음원이 발표되기 전 티저 형식으로 뜬 영상에 녹음실에서 땀이 흥건하게 젖은 채 걸어나오는 유병재 씨를 보고 혼자 빵 터졌고, 나는 나레이션 정도를 담당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웬걸, 유병재 씨가 담당한 건 다름 아닌 HOOK. 민호는 녹음을 마치고 나오는 병재 형에게 "형이 다 죽였어요"라고 말했었다. 노래를 들어보고 나도 민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19금 네임택이 달린 3번 트랙, '소원이지'는 나른한 분위기의 절정을 경험하게 해주는 곡이다. 노래에서 술냄새가 풍긴다고 하면 좋을까. "너랑 한번 자는 게 소원이지"라고 뱉는 남자의 목소리를, 유병재가 아니면 또 누가 이만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유병재 씨의 파트가 흘러나올 때마다 묘한 B급 감성이 얹어져 90년대에 출시된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유튜브 WINNER 채널 - 'FIRST SOLO ALBUM : XX' DIRECT MESSAGE



 민호는 때때로 인간의 마음에 떠오르는 노골적인 감정 그대로를 드러내는 걸 즐기는 것 같다. 누군가는 그런 부분을 불쾌해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람의 본능적인 정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왜 나쁜가 라고 반문하는 편이다. 게다가 송민호는 그러한 과감한 소재를 노래로 만들어낼 때면 본능과 줄다리기를 하는 이성도 곁에 배치하곤 한다. '소원이지' 속 화자 역시 그렇다. '너랑 자는 게 소원'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네가 경찰을 부르겠지'라는 판단 하에 입 밖으로 그 말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지켜줄 수 없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라 생각할 정도로 조심스럽다. 즉, 이 노래는 남성 화자가 혼자 마음 속으로만 중얼대는 말,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기분들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웹툰과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이 떠오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노래 말미에 천사와 악마의 대조적인 보이스가 흘러나오는 부분을 굉장히 좋아한다. 천사 파트는 1km 밖에서 들어도 송민호 목소리고, 튠이 씌어진 악마 파트 역시 민호가 녹음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여하튼 그 부분이 너무 너무 귀엽다(이 말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Hold up의 서로 다른 의미들을 천사와 악마가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것도 재미있다. Hold up! 버티라고 말하는 천사와 Hold up! 뺏어버리라는 악마, 만약 어느 한 쪽의 생각으로만 점철되었다면 지루하거나 혹은 과한 노래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민호는 본인이 밸런스 맞추는 데 천재적인 소질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려나? 문득 궁금해진다.


 참, 친한 동생이 '소원이지'를 듣더니 진짜 너무 싫은데 계속 듣고 싶어 죽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서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송민호 솔로앨범 <XX> 리뷰 (2) 아낙네




  민호가 솔로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과연 타이틀곡은 어떤 노래가 될지 굉장히 궁금했다. 민호는 항상 내 예상을 비켜가는 사람이고, 그래서 손으로 움켜쥐려 해도 자꾸만 빠져나가는 빛처럼 느껴지는 존재다. 나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대상에 대해 주어진 단서들을 근거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을 즐기는 편인데, 민호는 유독 내 상식선을 슝슝 뚫고 나와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송민호라는 인물을 규정하기보다는 그때 그때 보이는 그의 단면들을 조명하며 '이런 면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켜켜이 쌓아두기로 했다. 그렇게 쌓아둔 민호의 이미지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 민호가 첫 솔로앨범의 타이틀곡으로 낙점하는 노래는 대체 어떤 곡일지, 나로서는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앨범 발매일을 앞두고 있던 어느날, 앨범명이 <XX>라는 것, 그리고 이 'XX'가 무엇이든 상상 가능하고 정답이 없음을 의미한다는 이야길 접했을 때 기대감과 호기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이 사람 대체, 뭘 부르려고 하는 걸까.





 그렇게 물음표를 잔뜩 단 채로 만난 타이틀곡이 바로 '아낙네'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는 옛 말이, 이번에는 가차없이 틀려버렸다. 민호의 말을 빌리자면 '뽕힙합' 장르의 곡.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민호가 의도했던 'XX'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 '아낙네'가 아닐까 싶다. 그 누구도 '송민호'가 '소양강 처녀'를 샘플링해 '힙합'곡을 만들어낼 거라고는 예상 못했을 테니까.


 '아낙네'는 신선하고 충격적이면서도 어딘가 낯익은 느낌을 주는 곡이다. 익숙함은 아마도 '소양강 처녀'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소양강 처녀'라는 특정 곡을 잘 모르는 세대일지라도 이러한 분위기의 가락이 생소하지만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옛 가락이 힙합 비트에 녹아들어 '아낙네'가 되었다. 파격과 익숙함이라는 정반대의 단어가 민호의 세계 안에서 공존한다. 그렇게 송민호는 서울의 별 몽땅 두 눈에 담아버린 파랑새와 함께 유토피아로 나아가고 싶은 한 남자가 된다.





 '아낙네'는 일종의 구애가(求愛歌)다. 사랑을 갈구하는 행위는 아직 상대방의 마음이 나와 같음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 그래서 완성된 사랑보다 훨씬 더 원초적이며 '미칠 것 같은' 기분을 근간으로 한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소에서 바라본 상대는 내 시선 위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그 아낙네는 내게 너무하고, 까칠하고, 숨어 있으며, 가질 수는 없지만 언제까지나 내 발걸음을 이끄는 존재다. 손에 닿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몽롱하고 꿈 같은 내 연인. '아낙네' 뮤직비디오에서 이러한 형용사들을 이미지로 실현해내는 것은 아낙네가 아니라 그녀를 하염없이 그리는 송민호다. 아낙네는 얼굴을 보이지 않고, 우리가 디테일하게 볼 수 있는 건 오직 거의 미쳐 있는 듯한 한 남자일 뿐이다. 영상 속에서 그는 홀로 바람 부는 장소에 웅크리고 앉아 애절함을 표현하기도 하고, 방탕한 왕이 되어 공허한 눈으로 누군가를 찾기도 하며, 또 수백 수천 개의 손이 드리워진 갈대밭을 하염없이 헤매기도 한다. 사랑을 주는 이의 모습만을 꿰뚫는 뮤직비디오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이 남자를 미치게 하는 아낙네에 대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아낙네'가 좋은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쿨내가 진동하는 시대라 그런지 오히려 애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랑을 달라고 엥엥대는 노래가 마음이 와닿는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이면서, 결국 한다는 말이 "이뻐, 이뻐"라는 게 웃기고 귀엽다. 민호 특유의 익살이 곳곳에 묻어 있어 애잔하면서도 너무 딥하지는 않은, 듣기 좋은 노래가 되었다.


 참, 음원이 나오고 곧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아낙네'를 들려줬는데 흥미로운 반응이 돌아왔다. 총 4명이 모두 각자 다른 파트를 킬링파트로 꼽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똑똑 그대 보고 싶소'에 꽂혀서 중요한 시험 있는 시기에는 들으면 큰일 나겠다고 말했고, 또 다른 이에게는 Hook 부분에서 춤 안 추는 방법 좀 알려달라며, 자기가 분홍신이 된 것 같다는 답장이 왔다. 전주의 전자오르간 같은 소리가 흑백영화를 생각나게 한다며 이게 무슨 노래냐고 묻던 사람도, '우리 둘이 야리꾸리' 뒤에 '무리무리'  부분에서 음의 오르내림이 약간 변하는 부분이 너무 귀엽다고 웃는 사람도 있었다. 민호의 곡이 제각기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극하는구나 싶어서 나는 그저 기쁠 뿐이다.






송민호 솔로앨범 <XX> 리뷰 (1) 시발점




  오래된 한국영화 중 <시발점>이라는 작품이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故 신성일 씨와 국민배우 이순재 씨, 그리고 60년대를 뒤흔든 여배우 트로이카 1세대 중 남정임 씨가 출연하며, 이청준 작가의 <병신과 머저리>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김수용 감독의 영화다. 한국전쟁 이후의 시대적 배경을 지닌 이야기 속에는 주인공 형제가 나오는데, 이들은 각자의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간다. 예컨대 의사인 형은 수술 도중 한 소녀를 죽게 만들었는데, 이 일에 대한 트라우마로 병원 문을 걸어잠그고 매일 술에 취해 지낸다. 그는 자아성찰의 계기로 자신이 군인 시절 겪은 끔찍한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자신의 선택이 개입되어야 하는 어느 시점(결론)에서 막혀 더 이상 진전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망설인다. 화가인 동생은 소극적인 성격으로 인해 자신의 연인을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고 마는데, 자신을 자책하고 비하하는 동시에 그녀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매일 연인의 모습을 그리는 데 전념하는 데만 시간을 쏟는다. 트라우마를 가진 형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형의 소설은 동생이 일정 부분 개입하며 다소 소심하고 소극적인 결론을 맺지만, 술 취해 돌아온 형이 그 소설을 불태우며 또 다른 방향으로 삶이 펼쳐질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술 취한 형은 동생에게 네 애인의 결혼식에 다녀왔다며 "병신! 머저리!"라 소리치는데, 동생은 그제서야 큰 충격과 자신의 아픔을 자양분 삼아 앞으로 나아갈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적인 정신적 트라우마와 그 극복에 관한 이야기다. '시발점'이라는 단어는 어떤 일이 처음 시작되는 결정적인 계기 또는 지점을 의미하는데, 영어로는 대개 Trigger로 표현된다. Trigger, 즉 트리거는 총구의 방아쇠를 가리킨다. 총알은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발사될 수 없다.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는 무언가를 파괴하는 일에 동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방아쇠를 당기는 데까지는 상당히 크고 오랜 결심이 필요하다. 자신의 익숙한 현 상태를 뛰어넘는 어떤 계기, 시발점이자 트리거인 그것에 대해 민호는 어떤 방식으로 노래하고 있을까.





 송민호의 '시발점'은 거듭난 현재, 빛이 함께 하고 있는 지금의 자의식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곡이다. 종교적인 차원의 장엄함까지 느껴질 정도로 강력한 이미지를 내뿜고 있는 이 노래에서, "여태 쓴 가사 다 모으면 Holy bible Amen, 15년 7월 10일 3절 말씀 찢고 회개"라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성경의 <창세기> 1장 3절의 "빛이 있으라"는 구절과 완벽한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빛이 뚫고 나오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이 대목에서 15년 7월 10일이라는 특정 날짜는 <쇼 미 더 머니 4>에서 민호가 큰 실수로 대중들의 큰 비난을 받았던 그 시기를 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찢고 회개'라는 표현에서, 본인이 그동안 가졌던 편견 혹은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그 잘못된 생각을 찢어버리고 거듭났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자신의 실수 혹은 잘못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과정들은 당시 어렸던 민호에게 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후 민호를 따라다닌 '혐오'라는 꼬리표가 그를 얼마나 옥죄었는지, 당사자가 아니기도 하고 송민호라는 사람 자체가 부정적인 일들에 대해 일거수일투족 표 내는 성격도 아니기에 더더욱 다 알수는 없지만, 어찌됐든 그러한 가사를 적고 노래로 풀어냈다는 건 정말로 과거의 자신과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고 스스로 체감하고 또 확신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나의 과거에 방아쇠를 당기는 일, 하여 예전의 나를 찢고 파괴하는 일, 그 고통과 아픔을 겪고 민호는 마침내 어둠과 가시덩굴 사이를 빠져나온 게 아닐까. 그리고 2018년 발매된 첫 솔로앨범 <XX>와 '시발점'이라는 이 노래가 송민호라는 아티스트를 또 다시 거듭나게 하는 트리거가 되어준 게 아닐까.





 다시 잠깐 영화 얘기로 돌아가보면, 이 영화가 원작의 제목 대신 <시발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극장에 걸리게 된 데는 좀 우스운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국가 이념과 정책을 선전하던 기관인 공보처가 '병신', '머저리'라는 단어가 관객을 모독한다는 이유를 대며 검열을 통과시켜주지 않아서 제목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고. 2009년 김수용 감독이 한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분해서 '어떤 욕'을 떠올렸고, 그 다음에 '점'을 찍었다"고 말했다. 2018년 발매된 송민호의 솔로앨범 <XX>의 첫 트랙 '시발점'은 19세 판정을 받았다. 심의기구의 높으신 분들은 민호의 이 노랠 들어는 보셨는지, '시발점을' 그냥 '시발'에 '점' 찍는 정도의 방식으로 생각한 것인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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