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호 솔로앨범 <XX> 리뷰 (2) 아낙네




  민호가 솔로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과연 타이틀곡은 어떤 노래가 될지 굉장히 궁금했다. 민호는 항상 내 예상을 비켜가는 사람이고, 그래서 손으로 움켜쥐려 해도 자꾸만 빠져나가는 빛처럼 느껴지는 존재다. 나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대상에 대해 주어진 단서들을 근거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을 즐기는 편인데, 민호는 유독 내 상식선을 슝슝 뚫고 나와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송민호라는 인물을 규정하기보다는 그때 그때 보이는 그의 단면들을 조명하며 '이런 면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켜켜이 쌓아두기로 했다. 그렇게 쌓아둔 민호의 이미지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 민호가 첫 솔로앨범의 타이틀곡으로 낙점하는 노래는 대체 어떤 곡일지, 나로서는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앨범 발매일을 앞두고 있던 어느날, 앨범명이 <XX>라는 것, 그리고 이 'XX'가 무엇이든 상상 가능하고 정답이 없음을 의미한다는 이야길 접했을 때 기대감과 호기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이 사람 대체, 뭘 부르려고 하는 걸까.





 그렇게 물음표를 잔뜩 단 채로 만난 타이틀곡이 바로 '아낙네'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는 옛 말이, 이번에는 가차없이 틀려버렸다. 민호의 말을 빌리자면 '뽕힙합' 장르의 곡.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민호가 의도했던 'XX'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 '아낙네'가 아닐까 싶다. 그 누구도 '송민호'가 '소양강 처녀'를 샘플링해 '힙합'곡을 만들어낼 거라고는 예상 못했을 테니까.


 '아낙네'는 신선하고 충격적이면서도 어딘가 낯익은 느낌을 주는 곡이다. 익숙함은 아마도 '소양강 처녀'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소양강 처녀'라는 특정 곡을 잘 모르는 세대일지라도 이러한 분위기의 가락이 생소하지만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옛 가락이 힙합 비트에 녹아들어 '아낙네'가 되었다. 파격과 익숙함이라는 정반대의 단어가 민호의 세계 안에서 공존한다. 그렇게 송민호는 서울의 별 몽땅 두 눈에 담아버린 파랑새와 함께 유토피아로 나아가고 싶은 한 남자가 된다.





 '아낙네'는 일종의 구애가(求愛歌)다. 사랑을 갈구하는 행위는 아직 상대방의 마음이 나와 같음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 그래서 완성된 사랑보다 훨씬 더 원초적이며 '미칠 것 같은' 기분을 근간으로 한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소에서 바라본 상대는 내 시선 위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그 아낙네는 내게 너무하고, 까칠하고, 숨어 있으며, 가질 수는 없지만 언제까지나 내 발걸음을 이끄는 존재다. 손에 닿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몽롱하고 꿈 같은 내 연인. '아낙네' 뮤직비디오에서 이러한 형용사들을 이미지로 실현해내는 것은 아낙네가 아니라 그녀를 하염없이 그리는 송민호다. 아낙네는 얼굴을 보이지 않고, 우리가 디테일하게 볼 수 있는 건 오직 거의 미쳐 있는 듯한 한 남자일 뿐이다. 영상 속에서 그는 홀로 바람 부는 장소에 웅크리고 앉아 애절함을 표현하기도 하고, 방탕한 왕이 되어 공허한 눈으로 누군가를 찾기도 하며, 또 수백 수천 개의 손이 드리워진 갈대밭을 하염없이 헤매기도 한다. 사랑을 주는 이의 모습만을 꿰뚫는 뮤직비디오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이 남자를 미치게 하는 아낙네에 대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아낙네'가 좋은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쿨내가 진동하는 시대라 그런지 오히려 애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랑을 달라고 엥엥대는 노래가 마음이 와닿는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이면서, 결국 한다는 말이 "이뻐, 이뻐"라는 게 웃기고 귀엽다. 민호 특유의 익살이 곳곳에 묻어 있어 애잔하면서도 너무 딥하지는 않은, 듣기 좋은 노래가 되었다.


 참, 음원이 나오고 곧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아낙네'를 들려줬는데 흥미로운 반응이 돌아왔다. 총 4명이 모두 각자 다른 파트를 킬링파트로 꼽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똑똑 그대 보고 싶소'에 꽂혀서 중요한 시험 있는 시기에는 들으면 큰일 나겠다고 말했고, 또 다른 이에게는 Hook 부분에서 춤 안 추는 방법 좀 알려달라며, 자기가 분홍신이 된 것 같다는 답장이 왔다. 전주의 전자오르간 같은 소리가 흑백영화를 생각나게 한다며 이게 무슨 노래냐고 묻던 사람도, '우리 둘이 야리꾸리' 뒤에 '무리무리'  부분에서 음의 오르내림이 약간 변하는 부분이 너무 귀엽다고 웃는 사람도 있었다. 민호의 곡이 제각기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극하는구나 싶어서 나는 그저 기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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