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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로서의 송민호를 참 좋아한다. 민호가 힙합을 하는 사람이고 래퍼라서 더 좋다. 특히 래퍼들은 자신의 마음에 둥둥 떠다니는 단어들을 재구성해 가사라는 형태로 엮어내는 일이 일상이기 때문이다(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끊임없이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세상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 좋다. 잡생각이든 철학적인 함의가 있는 숙고든,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민호는 어느 시점부터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 사람을 끊었다고 이야기했다. 일부러 비워 둔 시간 동안 어떤 생각이든 했을, 그가 쓰는 노랫말이 민호만큼이나 좋다.


 요 근래 개인적으로 좀 힘든 일이 있어서, 해가 넘어간 뒤 하늘이 뺨을 붉히면 이어폰을 끼고 '겁'을 듣는다. 방에 혼자 앉아서 흥얼거릴 때도 있고, 익숙한 길을 걸으며 들을 때도 있다. 여유만 있다면 고개를 들었을 때 아무 것도 시야를 가리지 않는, 그런 곳에 가서 감상하고 싶기도 하다.





 '겁'은 3년 전, <쇼 미 더 머니 4>에서 민호가 부른 노래다. 실은 너무 유명해서 거창한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좋은 곡이다(자부심 ㅇㅈ?).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에 시달렸던 민호가, 어느 날 이 노랠 불렀다. 내게는 마치 정제되지 않은 곡식처럼 느껴지던, '겁'의 가사. 그래서 대충 삼키고 싶지 않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꼭꼭 씹어 소화하고 싶었다.


 야 이 병신아 티 좀 내지마, 마음 단단히 먹어, 알아 외롭지만 견뎌내야 돼.

 눈물 흘리냐 사내 새끼가. 뚝 그치고 다시 들어 책임감.

 한곳만 죽어라 팠는데 그게 내 무덤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무서웠어.


 늘 당당하고 자기애가 넘쳐 보이는 민호도, 자신을 뒤흔드는 수많은 채찍 앞에서 종종 겁이 난다는 가사. 그 채찍이 외부에 있는지 자기 안에 있는지 혼란스럽지만(아마 둘 다일 것이다), 멈추지 말고 갈 중요한 이유들이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이 들곤 한다. 사실 사람이 스스로의 약한 모습에 대해 말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SNS를 통해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내가 이만큼 잘 살고 있어"라던가 "나는 이렇게 즐거워"라고 말하려고 경쟁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마음을 나눈 사람들 앞이 아니면, 내 슬픔이나 고통에 대해서는 딱히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민호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겁'을 불렀을 때 마음이 더욱 동요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민호는 자신의 고난에 대해 말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고마움을 이야기한다.


 난 모든 게 감사해 내 종교를 떠나서, 6년 전부터 이 꼬맹이를 이용하려 했던 악덕 대표님들조차.

 날 구원해준 지금의 회사도, 이 무대를 내어준 수많은 참가자도, 남자의 삶을 알려준 하늘에 계신 큰아빠도,

 가족, 내 어깨들과 형제 같은 멤버들도.

 딱 오늘까지만 위로를 받고 내일부턴 겁쟁이가 아닌 성숙해진 나로, Love ya.



 노래의 막바지에 울려퍼진 이 가사를 들으며, 애초에 민호가 자기를 겁먹게 만드는 존재들에 대해 쓰기 시작한 것 자체가 어쩌면 그가 삶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라는 제목의 영화를 떠올렸다. 누군가는 고통 뒤에 고마움이나 행복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해 인위적인 낙관주의라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은 고통과 희망, 그늘과 빛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것이므로. 민호가 자신의 어둠을 쏟아낸 뒤 결국 꺼내든 것이 빛이라는 사실에 감동했다. 아마 나는 송민호를 좋아하기 이전에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먼저 갖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 계기는 확실히, '겁'을 통해서였다.


 나 역시 이 아픈 순간들 뒤에 다른 장면이 펼쳐질 거라 생각한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 해도 좋다. 오늘은 겁이 나지만, 내일은 그 겁을 계단 삼아 걸음을 옮길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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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까지 함께 일했던 그래픽 디자이너가 자주 했던 말이 있다. 파란색은 조금만 더듬어도 정체성을 잃어버려요, 언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그녀가 스윽스윽 출력물을 들고 와 화면상의 작업물과 함께 보여주었다. 꼭 파란색이 파란색 같지 않죠? 저는 분명 파랑을 원했는데, 파랑이 안 되는 거야. 내 눈을 믿을 수 없는 거죠. 손을 까딱해 생긴 작은 차이는 파랑을 파랑이 될 수 없게 한다, 퇴사한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면 꼭 그 말이 생각난다.


 까마귀는 까맣고 백조는 하얗고 민들레는 노랗고 장미는 빨갛다고 생각했던 어린 나는, 미술 시간이 지루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색을 골라들어 칠해야 하는 게 즐겁지 않았다. 그렇다고 룰 브레이커가 될 생각을 할 줄 아는 아이도 아니어서, 지겨움을 급식처럼 삼켜가며 버텼다.


 파란색 장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어른이 되고 나서였다. 친한 선배의 졸업 축하 꽃다발을 사기 위해 들른 꽃집 안에는 활짝 핀 푸른 장미가 딱 3송이 있었다. 안 그래도 화려한 외모의 장미가 쨍한 파란색을 만나니 안 예쁠 리가 없었다. 수완이 좋은 사장님은 이걸 섞어줄까요, 라고 제안했지만 푸른 장미는 빨간 장미보다 훨씬 비쌌다. 주머니가 깃털 같았던 나는 붉은기 가득한 다발을 들고 나왔다. 본래의 꽃말처럼, 그날의 나에게 푸른 장미는 불가능이었다.


 그 불가능의 꽃을, 요즘은 정말 자주 본다. 몸 여기저기, 생활하는 공간 곳곳에 푸른 장미를 걸어두는 민호 덕에, 보고 싶으면 플라워샵에 일부러 방문하는 것 대신 그의 사진을 보면 된다. 조금씩, 불가능이라는 세 글자가 옅어진다. 푸른 장미의 또 다른 뜻은 기적이라고 한다. 우연히 널 보고, 너의 말을 듣고, 생각지도 못하게 너라는 사람에게 매료된 것 자체가 내겐 불가능이자 기적인 것 같아. 내 삶에 푸른 장미를 꽃피워준 송민호에게, 언젠가 꼭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옛 동료를 다시 만나면 이야기할래, 나는 내 파랑을 찾았다고.




- ⓒ MINO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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