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호 솔로앨범 <XX> 리뷰 (7) 암




  얼마 전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힙합상을 받은 민호. '아낙네'와 함께 어떤 곡을 소화할까 궁금했는데, 생각지 못했던 이 노랠 불러서 깜짝 놀랐다. 나를 화들짝 놀라게 한 노래는, 다름 아닌 '암(AGREE)'. 이 무대는 송민호 아니면 할 수 없는,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민호가 얼마나 세심하고, 또 자기가 하는 것에 정성을 다 하는지 알기 때문에, 이 무대 구성 역시 그의 아이디어와 손길이 굉장히 많이 포함되었을 거라 추측한다.





 송민호 솔로앨범 <XX>의 10번 트랙 '암'은 들을 때마다 개인적으로 가장 조마조마해지는 노래다. 도입부부터 시작해 계속해 배경처럼 깔리는 비트는 나로 하여금 꼭 모스부호를 떠올리게 하고, 시작된 긴장감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이 노래의 압권은 가사다. 일단 민호가 어휘 구사력이나 문장을 창조적으로 만들어내는 재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내용적으로 굉장히 사실적이며 디테일해 처음엔 꽤 놀라웠다. 민호는 음악적 뿌리를 힙합에 둔 래퍼이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든 현직 아이돌이라는 것 역시 사실이기 때문에, 언제나 대중들 혹은 팬(또는 팬코)들의 대화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위치에 놓인 그가 이만큼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쇼킹했다. 하지만 그 놀라움은 이내 내가 민호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감정과 뒤섞여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안쓰러움으로 변했고, 다른 쪽으로 뻗은 가지는 그에 대한 리스펙이라는 열매를 맺히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이겨내' 하는 생각.


 민호는 어떤 단어를 사용할 때 그 단어의 여러 의미를 활용해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1) 우선 '암'이라는 단어는 암(cancer)으로 읽히는데 발암을 유발하는 자들, 즉 "지능형 안티팬", "항공사에 돈 주고 정보를 사"는 "비행기 옆자리 걔", 시도 때도 없이 "공깃밥 위에 이면지를 올려" 싸인을 강요하는 사람들, "어그로"의 행태를 묘사하는 데 쓰인다.

 2) 여기서 파생해, 발음상 '발암'과 같은 '바람'이라는 단어는 진짜 팬들이 일으키는 기분 좋은 "산들바람"과, "여기 저기 휘젓고" 다니며 "삿대질" 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바라는(Wish)" 지능형 안티팬들의 "투 머치 강풍"으로 이분화된다(눈치챘겠지만 '바람'은 이 안에서 또 Wind와 Wish 양 쪽으로 줄기를 뻗었다). 

 3) '암'은 또 "암 그렇고 말고"라는 관용어구 안에서 긍정 혹은 동의의 뜻을 품으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이걸 영어로 하면 "I entirely agree" 정도가 된다. 이 노래의 제목에 영어로 'AGREE'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 노랫말에 "I agree"라는 표현이 들어간 이유가 이로부터 나온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그저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무언가를 요구하고 바란다. 만약 자신이 바라는 걸 그가 들어주지 않거나 실현해내지 못한다면 가차없이 비난을 쏟아붓는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발암을 유발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이 다른 이의 심장에는 매서운 칼바람처럼 꽂힐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민호는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 같다. "당신은 이걸 할 수 있나요? 항상 잘 해내나요? 그렇다면 나는, 당신들의 바람을 다 이루어줘야 하는 사람인가요?" 이렇게 되물으면 다들 어떤 대답을 들려줄까? 아마 화를 내거나 욕을 하며 돌아서지 않을까? 노래 속에 반복되는 "암, 그렇고 말고"라는 부분이, 이제 민호의 읊조림으로 들린다. 민호의 생활 안에 어떤 고통이, 어떤 고민이 있는지 나는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노래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의 스트레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 - 이런 표현이 이 상황에 어울리는지 알 수 없지만 - 좋다. 이렇게라도 알려줘서… 정말 고마워 민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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